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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견(名犬)에 얽힌 스토리텔링: 서부 아프리카 바산지 – “숲의 침묵 속에서 노래하던 개”

by 도그러브 다이어리 2025.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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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사라진 숲, 그리고 노래하는 개

서부 아프리카 숲의 아침은 조용합니다. 새의 울음이 들리고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가 들리지만,
이곳에서는 개의 짖음이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 땅의 개들이 말 대신 ‘노래하는’ 개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개를 오래전부터 “정글의 목소리”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짖지 않지만, 자신만의 울음으로 세상과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날은 낮은 하울링처럼, 어떤 날은 짧은 멜로디처럼 — 그 소리는 마치 숲 속에 숨어 사는 영혼의 언어와도 같았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바산지(Basenji)는 짖지 않는 이유 때문에 유명해졌지만, 사실 그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숲이 낳은 사냥꾼’이었습니다.

 

서부 아프리카 바산지 이미지 – “숲의 침묵 속에서 노래하던 개”


사냥꾼이 아니라 ‘동행자’였던 개

아득한 옛날, 콩고강 일대의 부족들은 거대한 숲과 강 사이에서 사냥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은 바산지를 사냥 도구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발자국과 함께 걷는 또 하나의 사냥꾼이다.”

 

바산지는 덩치가 크지 않았지만 놀라운 순발력과 관찰력, 그리고 조용히 접근해 사냥감을 몰아내는 전략적 지능을 지녔습니다. 숲속 사냥은 소리가 곧 실패를 의미하기 때문에, 짖지 않는 특성은 오히려 신의 선물 같은 능력으로 여겨졌습니다.

 

바산지는 사냥꾼 앞서 가며 냄새 대신 움직임과 바람을 읽었습니다. 그는 명령이 아니라 감각으로 움직였고, 사람과 눈빛을 교환하는 순간, 그는 이미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말이 아닌 ‘신호’로 대화하던 개

어느 날, 사냥에 나선 한 젊은 사냥꾼이 있었습니다. 그의 곁은 조용했습니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는 긴밀한 교감이 있었습니다.

 

사냥꾼이 손짓을 하지 않아도 바산지는 풀이 흔들리는 방향을 보고 위험을 감지했고, 이따금 낮게 숨을 들이키며 “이쪽이다”라고 말하듯 몸을 돌렸습니다. 부족의 노인들은 말했습니다.

“그는 귀로 듣지 않고, 숲의 마음으로 듣는다.”

 

짖지 않는다는 것은 침묵이 아니라 직감의 언어였습니다.


사냥이 끝난 뒤에도 남은 신뢰

사냥이 끝난 뒤, 사람들과 바산지는 모닥불 앞에 함께 앉았습니다. 어린아이들은 그의 옆에 기대고, 어른들은 그에게 사냥감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개가 아니라 부족의 일원이었습니다. 훈련도, 계약도, 보상도 없었지만,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는 신뢰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바산지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 친구였습니다.
“나는 너의 개가 아니라, 네 곁에서 살아가는 또 하나의 ‘동행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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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을 건너지 않은 개

바산지는 오랫동안 서구 문명에 노출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숲이 그를 보호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목줄을 메지 않았고, 가축 우리를 지키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울타리 밖, 자연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거나 소유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산지를 “숲의 몫”으로 보았고, 숲이 허락한 시간 동안만 사람과 교감을 나누는 존재로 대했습니다.


유럽으로 건너간 뒤에도 바뀌지 않은 본능

20세기 이후 바산지가 세계로 소개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짖지 않고, 여전히 독립적이며, 여전히 ‘스스로 판단하는 개’입니다.

 

훈련사가 명령을 내려도, 그는 “왜?”라는 질문을 먼저 던지는 듯한 눈빛을 합니다. 그는 복종보다 이해를, 명령보다 관찰을 우선합니다.

 

그래서 그는 “가장 고집스러운 개”가 아니라, “가장 오래된 개의 사고방식을 간직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맺음말 – 침묵 속에 남아 있는 기억

바산지는 사람이 만든 품종이 아닙니다. 그는 숲이 길러낸 존재이고, 사람이 선택한 개가 아니라 사람을 받아들인 개였습니다.

 

그의 침묵은 비겁함이 아니라, 숲의 질서를 지키는 방식이었고, 그의 독립성은 한때 인간이 자연과 동등한 관계였음을 증명하는 흔적입니다. 바산지는 오늘도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짖지 않는 것은, 이미 너의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개가 아니라, 인간이 잃어버린 본능의 거울이었습니다.